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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브레니차 31년, 생존자의 기억이 ‘다시는’이라는 약속을 묻습니다

1995년 7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스레브레니차에서 8천 명이 넘는 보스니아 무슬림 남성과 소년이 살해됐습니다. 31년이 지난 지금도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그날은 끝난 과거가 아닙니다. 유엔 추모 행사에서 나온 증언을 따라가며, 기억과 국제법이 오늘의 혐오와 집단폭력을 막는 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굿커넥트임팩트 에디터·2026.07.09.

3줄 요약

  1. 1. 1995년 유엔 안전지대였던 스레브레니차가 함락된 뒤 8천 명이 넘는 보스니아 무슬림 남성과 소년이 살해됐습니다.
  2. 2. 생존자 하산 하사노비치와 유가족 에미나 시나노비치의 증언은 집단살해가 살아남은 사람의 일상과 미래에도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3. 3. 국제재판소의 판단과 유엔 추모일은 확인된 사실을 지키고 혐오 표현과 집단살해 부정의 초기 신호에 대응하자는 현재의 약속입니다.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함락 뒤 생존자와 탈출자의 이름을 확인하는 사람들
이미지: UNICEF / LeMoyne

숲길에서 살아남은 열아홉 살, 31년 뒤 유엔 연단에 서다

하산 하사노비치는 1995년 7월 11일 스레브레니차가 함락됐을 때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쌍둥이 형제 후세인과 함께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숲으로 향한 남성과 소년들의 대열에 섞였습니다. 보호받을 곳을 찾아 떠난 길이었지만, 숲속에서는 매복과 포격, 처형이 이어졌습니다.

몇 시간 만에 가족과 헤어진 하사노비치는 잠도 음식도 없이 여러 날을 혼자 걸었습니다. 그는 2026년 유엔총회 추모 행사에서 자신을 계속 움직이게 한 것은 오직 두려움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지만, 함께 길을 나선 아버지와 형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두 사람의 유해가 집단매장지에서 발견됐습니다. 하사노비치는 아버지와 쌍둥이 형제를 자신의 손으로 묻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장면은 사망자 수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실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한 번의 폭력은 가족의 시간과 살아남은 사람의 삶을 오랫동안 바꿉니다.

원문이 먼저 전하는 것도 거대한 국제정치보다 한 사람의 기억입니다. 스레브레니차를 이해하려면 8천 명이라는 숫자와 함께 누가 가족을 잃었고, 누가 증언을 이어가며, 그 기억이 오늘의 삶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유엔 안전지대’는 왜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나

스레브레니차는 1993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19호에 따라 안전지대로 선언된 곳이었습니다. 전쟁을 피해 몰려든 많은 주민은 이 지위와 인근 포토차리의 유엔 시설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1995년 7월 보스니아계 세르비아군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그 약속은 무너졌습니다.

피난민 가운데 남성과 소년들은 가족과 분리됐고, 이후 여러 장소에서 살해돼 집단매장지에 묻혔습니다. 여성과 소녀들도 강제이주와 폭력의 피해를 겪었습니다. 안전을 보장한다는 국제사회의 선언이 실제 보호 능력과 책임 있는 대응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유엔 집단살해방지 특별고문은 이 학살이 국제사회와 유엔의 집단적 양심에 무겁게 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추모는 희생자를 기리는 일인 동시에, 보호를 약속한 제도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과정입니다. 이름만 있는 안전지대가 아니라 위험 신호를 발견하고 사람을 실제로 보호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교훈이 남았습니다.

국제재판소는 스레브레니차에서 벌어진 일을 어떻게 판단했나

스레브레니차에서 벌어진 범죄의 성격은 정치적 주장만으로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와 국제사법재판소는 재판과 증거 심리를 거쳐 1995년 7월 이 지역에서 보스니아 무슬림 집단의 일부를 파괴하려는 의도로 집단살해가 자행됐다고 판단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07년 판결에서 스레브레니차의 행위가 집단살해에 해당한다는 기존 국제형사재판소의 판단을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세르비아가 집단살해를 예방할 의무와 국제형사재판소에 협력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범죄 행위를 세르비아 국가기관이 직접 저지른 것으로 귀속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법적 기준으로 구분했습니다.

이 구분은 복잡해 보이지만 중요한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국가가 무엇을 막지 못했는지, 사법적 책임이 어디까지 인정됐는지를 판결문에 따라 정확히 말해야 합니다. 확인된 사실을 정치적 필요에 맞게 흐리거나 과장하지 않는 것이 피해자의 존엄과 공적 기록을 함께 지키는 길입니다.

살해가 멈춘 뒤에도 빼앗긴 미래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에미나 시나노비치는 다섯 살 때 아버지와 할아버지, 삼촌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1995년 7월 13일 크라비차의 한 창고에서 살해됐습니다. 그에게 남은 아버지의 물건은 유해 곁에서 발견된 작은 담배 케이스 하나뿐입니다.

시나노비치는 많은 사람에게 스레브레니차가 역사의 한 장면이지만 자신에게는 매일의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집단살해는 총성이 멈춘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받을 수 없는 포옹과 들을 수 없는 말, 함께 만들지 못한 기억까지 빼앗는다는 설명입니다.

이 증언은 피해를 과거의 사망자 수로만 정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가족의 부재, 끊긴 관계, 반복되는 부정과 함께 살아갑니다. 추모 정책과 기록 보존, 유해 확인, 생존자 지원은 서로 떨어진 일이 아니라 남겨진 삶을 회복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집단살해 부정과 혐오 표현은 왜 오늘의 위험인가

유엔 사무총장은 스레브레니차 이후 세계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혐오 표현과 차별, 극단주의가 다시 커지고 전범을 영웅처럼 미화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대규모 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우리’와 ‘그들’로 가르고 존엄을 빼앗는 말과 정책이 먼저 자리를 잡습니다.

유엔총회는 2024년 7월 11일을 스레브레니차 집단살해 국제 성찰·추모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결의는 국제재판소가 확인한 집단살해를 부정하거나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을 미화하는 행위를 규탄하고, 교육과 공공기록을 통해 사실을 이어가도록 요청했습니다.

집단살해 부정은 단순한 역사 해석의 차이로 끝나지 않습니다. 유가족의 경험을 다시 지우고, 이미 확인된 범죄를 정치적 계산의 대상으로 만들며, 현재의 혐오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일과 혐오의 언어를 초기에 알아채는 일은 다음 폭력을 막는 예방의 일부입니다.

기억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다음 위험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스레브레니차를 기억한다는 것은 비극적인 장면을 반복해서 소비하는 일이 아닙니다. 생존자와 유가족이 남긴 말을 존중하고, 국제재판소가 증거로 확정한 사실을 확인하며, 보호를 약속한 제도가 실패한 지점을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뉴스를 읽고 나눌 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집단살해를 부정하거나 특정 집단 전체를 위험한 존재로 묘사하는 콘텐츠를 그대로 퍼뜨리지 않고, 날짜와 출처, 판결로 확인된 사실을 먼저 살펴보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자극적인 이미지나 숫자로만 소비하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다시는’이라는 약속은 추모식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혐오가 일상의 언어가 되는 순간을 알아보고, 위험에 놓인 사람을 실제로 보호할 제도가 작동하는지 계속 묻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가 확인한 사실을 어떻게 기억하고 다음 사람에게 전할 것인지가 그 약속의 다음 문장이 됩니다.

이 기사에 나온 용어

집단살해

특정 민족·종교·인종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없애려는 의도로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심각한 피해를 가하는 국제범죄입니다.

유엔 안전지대

전쟁 중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유엔이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지정한 지역입니다. 지정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실제 보호 역량이 함께 필요합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국가 사이의 국제법 분쟁을 다루는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입니다. 개인의 형사책임을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와 역할이 다릅니다.

집단살해 부정

법원과 증거로 확인된 집단살해 사실을 없었던 일로 만들거나 규모와 책임을 의도적으로 흐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 기사의 참고자료

이 기사는 공개 자료를 교차 확인한 뒤 커넥트임팩트 뉴스가 새로 기획·작성한 해설 기사입니다.